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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세계 곳곳을 누비는 배달의 무도!
서울시 마포구 '지구촌 동포연대'를 찾은 아시아 대륙을 맡은 하하는 "사연 신청하신 곳 맞죠?"라고 말했고, 이어 "이곳에 오기 전 사연을 접했고, 깜짝 놀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하는 "일본 우토로 마을에 대해서 아시나요? 이곳에 계신 어르신 분들은 늘 우리나라를 그리워하시는데요. 이분들을 위해 고향 음식을 배달해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사연을 밝혔으며, 하하가 배달갈 곳은 일본에 있는 우토로 마을이었습니다.
우토로 마을에 대해서 '지구촌 동포연대' 배덕호 대표는 "일제 강점기 때 중국, 러시아, 일본, 하와이, 쿠바, 멕시코 등으로 동포들이 많이 흩어져 살았었잖아요. 그 중 우토로 마을은 (일본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서)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이 형성한 조선인마을!"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은영 간사 "한국인 1300여명 정도가 강제 노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곳이 우토로 마을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제 2차세계대전!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38년 국가 총동원령을 선포, 전쟁의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한국인 노동력을 강제 동원했습니다. 그 숫자만 해도 무려 700여만명이었고, 1941년 교토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 1300여명 함께 모여 산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51번지가 바로 우토로마을입니다.
우토로마을에 대해서 배덕호 대표는 "1955년 유일한 강제 징용 노동자들의 집단 마을, 아직까지 침수가 번번한 지역! 차별의 상징이었죠. 우토로 마을 주민은 대부분 한국 국적!"라고 설명했고, 이어 "한국인들이 쫓겨날 위치에 처했었고"라며 강제 징용에 이어 강제 철거 대상이었습니다.
이은영 간사는 "1987년도에 주민들 모르게 땅이 팔렸어요. 어짜피 소유권도 없고.."라며 주민 전원에게 퇴거 강요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달리고 달려 우토로 마을에 다다른 하하
한쪽 벽에 가득한 우리말
한편, 우토로 마을이 생겨난 계기는 우리의 암울한 역사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1년 교토 군비행장 건설을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조신인 노동자 1300여명의 집단 합숙소로 건설된 곳이 지금의 우토로 마을입니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게 되자 조선이 광복을 맞으면서 비행장 건설이 중단되었고, 이때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방치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그들은 제각각 흩어졌으며, 징용자 중 몇몇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일부는 뱃삯을 구하지 못하거나 돌아갈 고향을 잃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된 공간이 아닌 그곳에 남아 공터를 닦아 무허가 정착촌을 이루고 살아가게 되면서 우토로 마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강경남 할머니 '징용되어 일본으로 모두 건너온 가족'
2005년에는 몇몇의 국회의원들이 '재일 강제징용촌 우토로 문제를 생각하는 의원모임'을 만들기도 했으며, 그것을 시작으로 사회 각계 단체와 인사들이 참여한 '우토로 국제대책회의'가 결성되고, 한겨레21의 주도로 '우토로 모금운동'이 한국 사회에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모금 열기가 더욱 뜨거워지면서 사회 저명인사들의 기부가 잇따르기 시작했고 그해 광복절을 앞두고는 우토로 후원을 마케팅 전략으로 삼는 카드회사와 쇼핑몰이 나타나 락 밴드의 후원 공연까지 이어졌으며, 다양한 연예인들까지 우토로 마을을 위해 소매를 걷고 나서자 그렇게 모아진 성금이 5억원에 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