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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최고참 후인정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배구 역사 그 자체이며, 2005년 V리그가 출범한 이후부터는 한 시즌도 쉬지 않고 코트를 누비기도 했습니다.
1997년 실업팀 현대캐피탈(당시 현대자동차써비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후인정은 라이트와 센터로 활약하며 8년간 팀의 주장을 맡았습니다. 1996~97시즌 이후 삼성화재의 9회 우승을 이끌었던 김세진 감독과 같은 포지션에서 뛰었던 탓에 2인자 꼬리표를 달기도 했지만, 프로 원년인 2005년 공격상과 정규리그 MVP를 휩쓸었고 2005~06시즌과 2006~07시즌에는 현대캐피탈의 정규리그 2연패를 이끈 주역이었습니다.
17년간 현대캐피탈에서만 활약한 후인정은 2012~13시즌이 끝난 뒤 재계약에 실패, 은퇴했으나 몇달 뒤 2013~14시즌을 앞두고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이 내민 손을 잡고 한국전력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최근에는 원 포인트 블로커로 코트보다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지만 주장이자 맏형으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팀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현대자동차써비스 시절 '스커드 미사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전매특허의 강력한 후위공격을 선보이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후인정은 통산 득점 19위(1,721점), 후위공격 17위(353점), 블로킹 20위(274개)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동네 예체능 '스커드 미사일' 후인정
수원 후씨의 시조 후인정
한편, 후인정은 화교 출신입니다. 1920년대 그의 할아버지(후배항)는 한국으로 건너와 충남 강경에서 중국음식점을 차렸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 후국기는 강경상고에서 배구를 시작했고, 70년대 금성통신에서 실업선수 생활을 거쳐 실업팀(선경) 감독까지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당시 키가 1m72㎝였던 후인정은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농구를 하려면 용산중, 배구를 하려면 인창중"이라고 했고, 그의 선택은 아버지와 같은 배구였습니다.
경기대 2학년 때 20세가 되었지만, 그는 태극마크를 달 수 없었습니다. 전국체전에도 못 나갔고, 외국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후인정은 대학(경기대) 졸업 무렵 국가대표 후보로 꼽혔지만 할아버지는 귀화를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태극마크가 꿈이었던 아버지는 아들 후인정의 귀화를 적극 밀었습니다. 한국인이 되던 날, 그는 호적서류에 본관을 '수원 후(侯)씨'로 적었고, 후인정은 수원 후씨 '시조(始祖)'입니다. 그는 이듬해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땄습니다.
한편, 96년 12월 후인정은 현대자동차써비스(현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고, 부인 김정은과 94년 겨울 수퍼리그 대구대회 때 처음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