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明)'나라의 초대 황제(재위 1368∼1398)입니다. 홍건적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각지 군웅들을 굴복시키고 명나라를 세웠으며, 동시에 북벌군을 일으켜 원나라를 몽골로 몰아내고 중국의 통일을 완성했습니다. '한족(漢族)' 왕조를 회복시킴과 아울러 중앙집권적 독재체제의 확립을 꾀하였습니다.
* 중국 명 왕조의 제3대 황제 영락제 (명나라 주원장 아들)
1402년 7월 17일, 중국 땅에 새로운 황제가 탄생했다. 명 왕조가 세워진 지(1368) 35년, 세 번째의 황제였습니다. 그러나 금과 옥으로 꾸며진 화려한 옥좌에 오르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친 조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뿌린 4년동안의 치열한 내전의 결과였습니다.
주체는 1360년 5월 2일, 명나라를 세운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주원장이 홍건적의 두령으로 원나라와 맞서 한참 항전을 벌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확실하지 않은데, 공식적으로는 홍무제의 정비인 마황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고려 출신의 '공비(碽妃)'라는 설이 있고, 또 원나라 여인에게서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이런 출생의 불확실함 때문에 그가 아버지나 형제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으리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주체: 훗날 명의 3대 황제 영락제
* 이방원과 명나라 영락제 관계
무수한 사신이 요동의 관문을 넘지 못할 때 이방원은 명 태조 주원장을 만나고 막혔던 외교 길을 뚫고 돌아왔습니다. 더욱이 이때 요동을 거치면서 주원장의 넷째 아들 연왕 주체(훗날의 영락제)를 만나 의기투합했습니다. 이방원과 주체가 모두 정변에 성공해 등극한 후 조선과 명은 전례없는 한중 우호를 누리게 됩니다. 명나라 연왕 주체는 이방원보다 4년 후 명나라 정권을 차지했습니다.
<육룡이 나르샤 41회>
이방원의 눈에 비친 주체는 첫눈에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독사눈을 닮은 눈동자에서 광채가 빛났고 두툼한 입술에 야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주체 역시 이방원이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읽었는데, 지금은 나이 어린 막내동생에게 세자의 자리를 내주고 야인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훗날, 이방원은 동생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연왕은 조카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묘호도 똑같이 태종(太宗)입니다.
황제 주원장은 이방원을 여러차례 만나 주었으며, 외교 관례상 보기 드문 이례적인 대우였습니다. 명나라가 아들을 보낸 이성계를 신뢰하고 이방원을 신임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이방원의 명나라 방문은 대 성공이었으며, '요동정벌론'을 주장하는 조선에 대한 명나라의 의구심을 풀어주었습니다. 1년 3사 외교도 복원하였고, 조선과 명나라 사이에 외교 난제를 해결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