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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왕 (禑王)
우왕은 이인임의 후원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이성계에 의해 폐위된 후 살해되었습니다.

 

1371년 신돈이 유배되자 당시 후사가 없던 공민왕의 아들로 알려져 궁중으로 들어가 이름을 우로 받고 강녕부원대군에 봉해졌습니다. 1374년 9월 공민왕이 암살되자 이인임의 후원을 얻어 1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즉위 초부터 원나라 및 명나라와의 외교관계가 순탄하지 못했고, 왜구까지 창궐하여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본성이 총명하여 처음에는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으나 점차 정사를 돌보지 않고 사냥과 유희에 빠졌고, 이인임마저 유배되어 정치적 지지기반을 잃고 말았습니다. 1388년 이성계의 반대를 물리치고 최영 장군의 주장에 따라서 요동정벌을 단행했다가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이 유배되면서 폐위되어 강화도에 안치되었다가 강릉으로 옮겨진 후 아들 창왕과 함께 이성계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우왕 (고려의 제32대 왕)

 

 

* 공양왕 (恭讓王)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이성계 등에 의해 왕으로 옹립된 후 신진사대부의 세력확장에 이용되는 등 불운하게 생을 마쳤습니다.

 

1389년 이성계, 심덕부 등에 의해서 창왕이 폐위되자 왕위에 올랐으며, 즉위 후 이성계 일파의 압력으로 우왕과 창왕을 죽였습니다. 남은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함으로써, 1392년에 폐위되었다.

 

* 최영 (崔瑩)
최영은 고려 말기의 혼란한 내외 정세 속에서 고려를 지탱하려 했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 맞서다 체포되어 참형을 당했습니다.

 

'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종신토록 명심하여 명리를 돌보지 않고 청렴하게 살았습니다. 1356년 공민왕이 반원개혁을 단행하여 영토수복을 꾀할 때 압록강 서쪽의 원을 내몰고 고려의 옛 영토를 회복했습니다. 왜적의 침략을 격파하고, 홍건적을 물리치는등 외적의 침략에 맞서 이긴 명장이었습니다. 공민왕의 뜻에 따라서 요동 정벌을 계획했으나 이성계의 회군에 따라 좌절되었습니다.

 

 

육룡이 나르샤 최영 장군

 

 

12월 7일 방송된 SBS 창사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 19회에서는 역사적으로 조선 건국의 결정적 계기가 된 '요동정벌'이 시작되는 과정이 공개되었습니다. 요동정벌은 지난 1388년 고려가 명나라의 대고려 전진기지인 '요동지방'을 공격함으로써 명나라의 압력을 배제하려던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