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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최고의 지장 서희 (徐熙)
서희는 거란의 침입에 대해 적장과의 담판으로 군사를 물리치고 영토 확장에 기여했고, 10여년간 외교적으로 단절되어 있던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벼슬을 받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993년 고려의 북진정책과 친송외교에 불안을 느낀 거란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고, 대비가 없던 조정은 항복하자는 의견과 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화의하자는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이에 서희는 거란과 담판지을 것을 주장했고, 왕의 승낙을 받아 담판에 임한 서희는 고려 북진정책의 타당성과 여진족에 대한 공동 평정을 제안하여 받아들여지고 거란의 군대는 물러갔습니다. 그 결과 3년간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몰아낸 뒤 강동 6주에 성을 쌓아 고려의 영토를 넓히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거란군 장수 소손녕, 압록강 넘어...
5월 22일 KBS2 역사저널 그날 '개국 최대의 위기 - 80만 거란 대군, 고려를 침공하다!' 편
거란과의 첫 전투에서 대패한 후 위축되어 있던 고려는 거란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고 위협하자 거란을 사대로 받들자는 '항복론'과 그들이 요구하는 서경 이북의 땅을 넘겨주자는 '할지론'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대신들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하며 등장한 서희는 소손녕이 거듭 항복만을 요구하는 의도를 간파하고 협상을 시도했고, 놀랍게도 서희는 소손녕과 협상을 끝내고 거란에게 강동 6주의 땅과 선물까지 받아서 돌아왔습니다.
거란 대군의 침략을 피 한방울없이 막아낼 뿐만 아니라 영토까지 획득한 외교의 달인 서희 과연 그의 전략은 무엇이었을까요?
거란의 제2차 침공! 고려의 운명은?
1009년 고려에서 강조가 군사를 일으켜 왕을 교체한 정변이 일어났으며, 이에 거란은 대역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제2차 고려 원정을 단행했습니다.
거란의 왕 성종은 '의군천병(義軍天兵)'을 칭하며 40만의 보병과 기병을 직접 이끌며, 1010년 11월 강동 6주의 흥화진을 공격하며 막이 오른 제2차 거란 전쟁. 11세기 동아시아의 최강자였던 거란의 대군에 맞선 고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요?
강동 6주 외교의 달인 서희
고려 비장의 신무기, 검차(劍車)
고려군이 거란의 흥화진 탈환을 막아내자 거란군은 병사를 절반으로 나누어 통주로 우회하고, 통주는 청천강 이북 지역의 요충지로 강조가 지휘하는 고려의 방어군이 주둔하던 곳입니다.
거란 침략의 명분을 준 강조는 수레에 창을 꽂아 거란 기병의 접근을 막고 효과적인 공격이 가능한 신무기 '검차'를 이용했습니다. 검차를 이용해 수차례 거란군을 물리친 고려군은 급습한 거란군에 강조가 생포되는데, 그가 연이은 승리에 자만하여 바둑까지 두었다는데... 도대체 통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