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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 성공시대! 대한민국 대표 스타보다 유명한 포토그래퍼 조선희는 연예인이라면 작업하고 싶어하는 워너비 사진작가입니다. 명품독설로 모두를 긴장시키는 카리스마! 최고의 자리에서 최고의 열정을 뿜어내는 그녀 조선희입니다.
사진작가 조선희는 6층 건물에 대해서 "반은 은행꺼에요. 1998년 첫 스튜디오를 오픈! 보증금 1500만원, 월세 56만원에 시작했어요"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사진작가로 데뷔한지는 20년! 시작한 건 25살이니까 지금 45살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스타보다 유명한 포토그래퍼 조선희
고가의 카메라 장비로 가득한 이곳 조선희의 스튜디오
조선희는 톱스타들과 작업한 영화 포스터에 대해서 "손예진 씨. 현빈 씨. 현빈의 군 제대후 복귀작 역린 포스터! 국내 멜로영화 기록을 세운 건축학개론. 90년대 첫사랑의 아련함을 담은 포스터! 전체적으로 톤이 풋풋한 느낌이 나게 하기 위해서 햇볕 느낌을 많이 살려가지고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이 아련함을 더하는.."라고 말했고, 이어 영화 관상 포스터에 대해서 "스스로도 가장 만족스러워한 작품이다. 찍을 때 고생 진짜 많이 했어요~ 그냥 찍은거 같지만 촬영할 때 앞에 뜨거운 조명 50대쯤 있었어요. 사진을 그림처럼 표현하기 위한 촬영 기법을 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정재에 대해서 조선희는 "이정재 사진 때문에 제가 완전 마이너에서 메이저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는 거 아니야!"라고 밝혔습니다.
여러 장치나 꾸밈없이 오로지 인물에 집중한 촬영
경북 칠곡 왜관 출신의 조선희는 "사실 학교는 고등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나왔고, 엄마는 왜관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대구 만물상회 셋째 딸!"이라고 말했고, 이어 "부모님이 함께 장사를 하셔서 유복할 뻔 하다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라며 이후 급격히 집안 형편이 기울어졌다고 말했습니다.
힘든 시절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조선희는 "5남매 중 4명이나 서울에 위치한 대학을 보낸 어머니를 닮은 거죠. 오빠는 중대 국문학과, 제 동생은 이대! 저는 연세대 의생활학과"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밝혔습니다.
서수민 PD와의 자취 생활을 함께한 조선희는 "연탄 가는 거 때문에 재밌었죠! 뜨거운 물이 없어서 세수도 못하고.."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3년에 200만원의 수입으로 힘들게 보낸 시간...
포토그래퍼로 유명해지기 전에 조선희는 "잡지 인터뷰 촬영으로 김수현 작가 댁을 방문했는데.. 그 집에 가서 7시간 있었어요. 인터뷰 동안 사진 촬영을 하고 끝난 뒤에도 제대로 사진을 찍기 위해 남아 있었는데.. 그 분이 '이렇게 오래 사진을 찍고 있는 양반은 처음 봤다'라고 저한테 그러면서 선물을 주셨어요. 술이었어요"라고 밝혔습니다.
조선희는 본인이 생각하는 성공의 비결에 대해서 "사진은 내가 좋아해서 더 잘하고 싶은 것! 명예나 부의 수단은 아니다. 요새 애들은.. 제가 20대나 고등학생 강연회를 가면 그 친구들의 질문이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어요'라고 묻는데 잘 못 된 질문이죠"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