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33회, 삼봉 정도전 탄핵, 정도전 유배, 정도전 정몽주 죽음, 이성계 낙마사건, 이성계 이방우 세자, 이방우 죽음, 이방원 정몽주 선죽교, 정몽주 조영규, 정몽주 피살
공양왕 즉위 초기만 하더라도 고려 조정에는 구세력과 신세력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공양왕은 두 세력의 완충 역할을 하며 자리를 보존했으나 오래지 않아 이성계는 경제권을 장악한 데 이어 군사권까지 장악했습니다.
1391년(공양왕 3)에 기존의 5군을 폐하고 3군으로 개편한 후 이성계가 삼군도총제사, 조준이 좌군총제사, 정도전이 우군총제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왕과 창왕을 죽이고, 창왕을 옹립하고 우왕 복위를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이색, 우현보, 변안렬 등의 구세력을 처단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정몽주를 필두로 한 반이성계 세력들은 최후의 저항을 했습니다. 속설이기는 하지만 1389년(창왕 1) 10월 11일 이성계의 생일날 이성계가 이방원을 시켜 정몽주와 변안렬을 초대해 자기들에게 동조할 뜻이 있는지 여부를 타진했다고 합니다.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하여가(何如歌)'를 부르자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라는 '단심가(丹心歌)'를, 변안렬은 "가슴팍 구멍 뚫어..."라는 '불굴가(不屈歌)'를 불러 끝까지 고려에 충성할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들에게 이성계 세력을 제거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392년(공양왕 4) 3월, 명나라에 갔다가 귀국하는 왕자 석을 황주까지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돌아오는 길에 사냥을 하다가 낙마해 다리가 부러진 것입니다. 정몽주 등은 이번 기회에 이성계의 심복들을 제거하고 나아가 이성계 세력을 일망타진하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조준, 정도전, 남은, 윤소종 등의 8장상(將相)을 탄핵해 제거하려고 했으나 이러한 계획은 이방원이 정몽주를 격살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육룡이 나르샤' 정몽주, 정도전 탄핵 '노비 출신 공개'
<육룡이 나르샤 33회>
이방우(이승효 분)는 이성계가 왕이 되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반기를 들었고, 이방우는 순금부에 끌려간 뒤 이성계를 만나 "세자가 되고 훗날 제가 왕이 된다면 전 다시 고려의 왕씨에게 선위를 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한편, 포은 정몽주는 과거 성균관 유생시절 자신의 조모가 천출신분일지도 모른다고 비밀이야기를 약점으로 꺼내들어 삼봉 정도전을 탄핵시켰고, 이에 이방원은 자신의 스승을 탄핵시킨 정몽주에 대해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고 읊조리며 복수를 예고했습니다.
* 이방우 진안대군
이름은 방우(芳雨). 전주이씨 진안대군파의 시조입니다. 태조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이고, 부인은 찬성사 지윤의 딸입니다. 정종과 태종의 동모형입니다.
고려 우왕 14년(1388년)에 부친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처자를 데리고 세상에 숨어 살 뜻으로 교주강릉도 철원 보개산에 들어가 은거하였습니다. 조선 건국 후에도 국가 일에는 일체 간여하지 않고 서해도 해주로 옮겨 가서 서너달 숨어 살다가, 아버지 태조 이성계로부터 동북면 고원 땅 전사를 하사받은 후에는 고향인 동북면 함흥으로 다시 옮겨 간 후 1년여만에 사망하였습니다.
조선 태조 1년(1392년)에 여러 왕자를 군으로 봉할 때 진안군에 책봉되었으며, 1년 후인 태조 2년(1393년) 음력 12월 13일 향년 4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졸기에는 술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